역사를 맘대로 바꾼 일본인

논개가 끌어안고 죽은 왜장, ‘신의 칼’ 이란 별명을 가진 게야무라 로쿠스케는 임란때 다이묘로 승승장구한 전설적인 사무라이였다. 

그의 죽음은 그러나 명성에 걸맞지 않았다.

진주성싸움의 승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술을마시다 ‘논개’라는 조선여인에게 죽임을 당한것.

평소 존경하던 일본인 ‘우에츠카 히로우’는 

기가 막힌 생각을 하고, 실행한다.

우에스카는 한국 진주를 찾아가 자신은 논개를 존경하는 일본인이라고 주장, 한일관계 개선을 명목으로 내세워 논개의 넋을 일본으로 모셔간다.

이때 우에스카는 진주 남강에 국화와 천 마리의 종이학을 띄워 논개와 게야무라의 넋을 건지는 초혼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논개가 순국한 진주에서 나무, 흙, 모래 그리고 돌을 가져다 게야무라 사당옆에 논개의 무덤을 꾸미고 친일 화가 김은호의 ‘논개’를 묘사한 그림을 가져가 영정으로 사용.

(당시 진주시에서는 그의 말도안돼는 주장을 믿으며 흡족해하고 적극 협조했다고)

그 후 논개의 영정, 묘비는 게야무라의 무덤 옆에

게야무라의 아내·처제와 함께 모셔졌다.

결국 일본에서 논개는 게야무라의 첩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일본 장수를 잊지 못한 논개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게야무라와 해로했다’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논개는 일본에서 부부금실을 좋게 해주는 ‘신’ 으로 사람들이 모시게 되었다.

이런 풍문이 돌기도 하고, 이상한 설도 있었다.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에스카가 논개 영정을 게야무라 무덤 옆에 걸어놓고

게야무라와 은밀히 영혼 결혼을 시켰다”

이런 어이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줄도 모르고

당시 진주시에서는 우에스카씨에게 감사장까지 선사했다고 한다.

뒤늦게 시민단체에서 알아내어 이 말도안되는 사건을 이슈화 시켰고 정부와 시 당국에서는 영정과 우에스카 씨가 진주에서 가져간 것들을 모두 회수시키게 된다.

우에스카는 말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전설적인 사무라이, 평소 자신이 존경해왔던 일본 장수가 조선의 여인의 계략에 빠져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도저히 믿기 싫어 내가 역사를 바꾸고 싶었다”

이렇게 역사왜곡에 성공,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뒤늦게 알아챈 한국의 민간단체의 항의로 미친놈의 사기극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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